천의 얼굴 인도
최첨단 설비로 단장한 인천공항을 떠난 나에게 여기가 바로 인도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공항 출입문 앞에는 몇 마리의 개들이 더위에 늘어져 엎드린 채로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래! 이곳은 분명 인도의 관문 델리 국제공항이다."
라자스탄의 집시
불멸의 사랑 타지마할
이제는 전 세계인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사랑의 상징이 되어버린 타지마할에는 유난히도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백색의 대리석이 눈부신 타지마할은 건축의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화려한 무덤이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숭고한 사랑을 상징하기 위해 동원되고 죽었을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것은 불멸의 사랑이 아니라 왕비를 영원히 소유하고자 했던 샤자한 황제의 소유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0명이 넘는 후궁을 거느린 황제에게 죽은 왕비를 위해 지었다는 저 화려한 무덤은 무엇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래도 그곳에서 만난 인도 청년들과의 즐거웠던 한 때가 나는 더 기억에 남는다.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우리였지만, 함께 웃음을 나눌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간만큼은 타지마할이 주는 화려한 메시지보다도 내게는 훨씬 더 큰 울림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강, 갠지스
강물에 꽃등불 천 개를 띄우면
지상에서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기에
별도 없는 한밤중에 꽃등불을 띄우네
999개까지는 띄워 보냈지만
마지막 한 개는 차마 띄우지 못해
내 남은 목숨을 다 사루어
마지막 꽃등불로 띄어야 하기에
살아있는 이의 소원과 죽은 이의 잿가루가 뒤엉켜 흐르는 갠지스강, 동행했던 한 시인이 거친 숨을 토하듯 시 한 수를 쏟아낸다. 마지막 꽃등불은 결국 내 목숨을 사루어야 한다는 시인의 고백에 전율하며 갠지스강 위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다 나 역시 꽃등불 하나를 강물에 실려 보낸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인도인의 다리는 가늘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가는 다리로 인도인들은 어디론가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12일의 짧은 기간을 뒤로하고 이 땅의 현실로 돌아온 나는 지금 희고 통통한 다리로 이 땅을 거닐고 있다. 검고 가는 다리와 희고 통통한 다리, 딛고 있는 땅이나, 받치고 있는 삶의 무게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 그 둘이 향하고 있는 곳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생의 어느 한 때에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도, 내세에 어떻게 태어나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도 결국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며 윤회라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오늘은 깨끗하게 단장된 거리를 걸으며 나를 비추고 있는 아침햇살에게 가만히 감사의 인사를 전해본다. 맨발로 아스팔트를 걷던 순례자의 걸음처럼, 감사의 마음으로 내딛는 오늘 이 발걸음이 어쩌면 내 삶의 남은 반환점을 딛는 첫 발일지도 모를 일이다. 발끝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의자세, 아마도 그것이 인도가 내게 가르쳐 준 삶의 지혜가 아닐까?
“인생이여 고마워요. 단야바드~ 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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