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6일 금요일

나는 아사다 마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연아의 금메달 소식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 하다. 세종시 수정안 공방으로 지칠대로 지친 우리들에게 김연아의 금메달 소식은 마른 가뭄의 소낙비 같은 뉴스임에는 분명하다. 더욱이 경기 직후 흘린 그녀의 눈물은 경기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과 마음을 촉촉히 적셔 주었다. 아직은 앳띤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부담감에 대한 안스러움과 너무 과한 부담을 준 것 같은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이 그 같은 공감대를 이루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눈물은 감격의 눈물이고 기쁨의 눈물이기에 안쓰러움과 미안함은 잠시일 수 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김연아만의 것이 아니었다. 여린 어깨에 짊어진 부담의 국적은 다르지만, 오히려 김연아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많은 날을 자신과 싸워야 했던 아사다 마오의 눈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무도 그녀의 눈물에 관심을 갖을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1등이 아니고, 승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가 1등을 기억하고, 그 1등을 위해 치열히 경쟁하는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며, 그것이 세상을 사는 제1원칙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 유치원 시절부터 경험하기 시작하는 숫자화된 순서는 입시와 취업이라는 양대 관문을 통과하면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오직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이 제1원칙을 우리는 너무 충분히 교육 받아서 이미 DNA화 되었기 때문이다.

안도현의 성인동화 "연어"에 보면, 네잎 클로버의 소중함은 너무 흔하게 널린 세잎 클로버 덕분이며, 하늘에 빛나는 별빛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1등은 2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는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그 당연한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잊어버리고 사는데 너무 익숙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1등을 위해 축하하지 말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1등을 위해 숙명적으로 존재하는 그 나머지 역시 똑같이 격려받고 관심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일의 결과는 모든 과정을 다 포함하지 못한다. 특히, 스포츠와 같이 짧게는 수개월 부터 길게는 수년의 걸친 훈련의 고통을 단 몇분에 판가름하는 경우에는, 그 결과가 모든 것을 포함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사다 마오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견뎌왔던 혹독한 훈련의 고통과 부담은 누가 어떻게 안아주어야 할까를 생각했다. 김연아에게 보내준 박수만큼이나, 아사다 마오에게도 똑같은 양의 박수를 보내주자. 1등과 2등이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의식이 형성될 때 우리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1등은 하나이고 모든 사람은 2등일 수 밖에 없다. 그 하나의 자리가 내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모든 이가 온 삶을 경쟁의 정글에 내던지는 것 보다, 2등도 1등만큼 중요하다는 성숙된 의식이 자리잡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오가 울던 그 자리에 김연아가 있게될지, 아니면 바로 그 자리가 우리가 서있는 자리일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아사다 마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출처 : 내 미니홈피 : http://minihp.cyworld.com/40579801/227899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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